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까마귀와 나 / 안미옥

주선화 2020. 11. 16. 09:04

까마귀와 나

ㅡ 안미옥

 

 

우리는 잘 잘린 얼음처럼 미끄러진다.

 

검정과 바꿀 수 있는 빛깔을 찾아보자고 약속했었지.

너는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이 물에 빠진 자기 발을 꺼내지 못해 쩔쩔 매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옆을 지나쳤다. 그의 검은 신발. 너의 검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씨앗이 전부 썩어버린 빈 밭에 서 있는 것이 네가 아니듯.

겹겹의 그림자를 찢고 있는 것이 네가 아니듯.

 

너는 나를 믿는다고 했다.

귀가 밝아 슬퍼지는 마음처럼, 나는 찾은 적 없던 것을 찾게 될 것 같다.

머뭇거리면서, 계단을 뒤적이는 손끝.

 

연못엔 금붕어가 부케처럼 모여 있고, 정원엔 감춰진 곳이 많다.

 

너의 검정은 절반의 통로. 안도 바깥도 아닌 자물쇠 틈에 있다.

누군가 불길한 팔을 뻗을 때, 간결하고 간소한 마음이 되는 것.

 

우리는 부서지고 열리는 어린잎을 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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