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비 /서연우

주선화 2020. 11. 5. 22:06

ㅡ서연우


비는,
꽃핀다.
아스팔트 위에,
뿌리 없이,
빛보다 빠르게 빛보다 선명하게,

비는,
춤 춘다.
처음 그곳으로 다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절정의 무희,
투명은 투명으로 묻히고
액화된 슬픔은 땅으로 스미고

환호도 없이 관객도 없이
주저앉아 죽은 꽃,
그 위에, 쉼 없이 피고
쉼 없이 소멸하는
비의 꽃,
고인 곳을 찾아 끈질기게
죽는 자는 죽고
죽은 자를 밟고
산 자가 산다. 미친 듯이 산다.
어디서 온 것인지
혼자 남은 나조차 소유할 수 없는
비가 낳은 꽃, 사이사이
해마다 한 뼘씩 키가 자라던 나무
그림자가 흘러간다.
뒤돌아보지 마라.
꽃이 진다.

죽음의 시간.
물의 꽃무덤은 형체가 없고,
그냥 진다. 빛보다 빠르게, 빛보다
선명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
전부인양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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