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 아래
ㅡ 함명춘
천장과 바닥도 그늘로 지어진 두 평도 채 안되는 집
도깨비바늘같이 콕콕 찌르던 땡볕도 쉬어 간다
갈라진 평상 틈 사이로 기어들어 온 애기똥풀들이 부처처럼 미소 짓고
길 잘못 든 배롱나무 가지 하나가 잠시 꽃을 피우다 말고
까닥까닥 한 귀퉁이에서 졸고 있다 밥때엔 화투를 쥐고 몰려든 사람들
스물하고도 일곱 내리 지다 피박, 광백에 쓰리고 한 판으로
지긋지긋하게 꼬였던 어느 한 인생의 팔자가 활짝 펴기도 한다
어느새 하늘 깊숙한 곳부터 자두처럼 달이 익어가는 저녁이 오고
빠르기만 한 세상의 바퀴에 치여 튕겨 나온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낯선 한 사내의 천둥 벼락 같은 울음이
터졌다, 뚝 하고 그친다 이내 갈 곳을 정한 듯 어금니를 물고
단단하게 구두끈을 동여매더니 서둘러 길을 나선다 덜컹거리며
마을 어귀 지나는 바람의 완행버스에서 어깨가 건장한 적막 몇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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