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노거수 아래 / 함명춘

주선화 2020. 12. 29. 11:06

노거수 아래

 

ㅡ 함명춘

 

 

천장과 바닥도 그늘로 지어진 두 평도 채 안되는 집

 

도깨비바늘같이 콕콕 찌르던 땡볕도 쉬어 간다

 

갈라진 평상 틈 사이로 기어들어 온 애기똥풀들이 부처처럼 미소 짓고

 

길 잘못 든 배롱나무 가지 하나가 잠시 꽃을 피우다 말고

 

까닥까닥 한 귀퉁이에서 졸고 있다 밥때엔 화투를 쥐고 몰려든 사람들

 

스물하고도 일곱 내리 지다 피박, 광백에 쓰리고 한 판으로

 

지긋지긋하게 꼬였던 어느 한 인생의 팔자가 활짝 펴기도 한다

 

어느새 하늘 깊숙한 곳부터 자두처럼 달이 익어가는 저녁이 오고

 

빠르기만 한 세상의 바퀴에 치여 튕겨 나온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낯선 한 사내의 천둥 벼락 같은 울음이

 

터졌다, 뚝 하고 그친다 이내 갈 곳을 정한 듯 어금니를 물고

 

단단하게 구두끈을 동여매더니 서둘러 길을 나선다 덜컹거리며

 

마을 어귀 지나는 바람의 완행버스에서 어깨가 건장한 적막 몇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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