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얼굴로 오래 울었다
ㅡ 이 향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는 사이
얼굴이 뭉개졌다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온갖 것으로 덧칠된 그림자
그것은 얼굴이면서 그 이상이라 생각했다
없는 얼굴로 키스를 하고
없는 얼굴로 밥을 먹고
없는 얼굴로 지하철을 탔다
얼굴 없는 채로 모자를 쓰고 나를 찾아 돌아다녔다
얼굴 없다는 것이 얼굴이기를, 다시는
얼굴이 돌아오지 않기를
그 누구도 아니어서
아무것도 아니어서
없는 얼굴로 더 오래 울었다
이제 기다릴 수 있을까
네가 돌아온다 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사라진 건 아니니까
*옥타비오 파스 (태양의 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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