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칼맛 / 윤이산

주선화 2021. 3. 8. 17:04

칼맛

 

ㅡ 윤이산

 

 

사내가 칼을 내리치자

수평선이 툭, 끊어진다

 

워밍업을 끝낸 사내,

작심의 날을 벼린 칼끝에

시퍼런 물빛 긴장이 스치더니

고등어 배가 갈라지고

뼈와 껍질에서 살점이 분리된다

 

껍질이 벗겨졌는데도 여전히

속살에 배어있는 물결무늬

엔진과 스크루 없이도 무늬를 저어

바다를 밀고 갈 기세다

 

칼질이 남긴 살점 위로

한 차례 거친 발버둥이 지나고

사내의 단호한 칼날이 단숨에

몸부림을 떠낸다

 

솜씨, 귀신 같아요 진짜, 꾼이신가 봐

새콤한 찬사를 듣고 내가 즉석 상차람 앞에 끼어든다

 

회는 무엇보다 칼맛이지요

번개 스치듯 단박에 베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산목숨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몸 안 가득 번지는 피비린내를 소주로 헹궈 낸 사내가

바다를 향해 밀린 오줌을 갈기고는

칼을 좀 더 갈아두어야겠다며 사포를 꺼낸다

 

바다 한가운데, 흔들리는 상판 위에서

칼맛을 씹는다

 

곧 물때가 바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