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
ㅡ 천수호
매일밤 꿈을 꾸지만
꿈속에선 개가 아니어서 꿈 밖으로 끌려나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영원히 꿈속에 살 거라 버팅기지도 않았기에
개의 사생활은 발자국을 찍어봐야 아는 것이었다
눈 덮인 길이거나 모래밭 길이 아니면
내가 개라는 근거도 없지만
내가 짖는 소리에 내가 놀라면서
발소리를 더 빠르게 내는 뜀박질의 나날들
눈과 입이 다르게 웃는 사진이
목끈 매인 개처럼 문 앞에 걸려 있다
사진관의 문지기 사진처럼 누가 들락거리는 것을 막지도 못할
심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꿈속에서 왈왈 짖던 말티즈 한 마리가
꿈 밖에서 사람 걸음을 걷는 놀라운 목격담 같은 것을
소용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슬퍼서 귀를 막고 천둥처럼 혀를 찼다
개는 소리를 믿고 소리를 향해 짖지만
꿈속의 나는 소리를 의심하면서 더 깊이 침묵하고 싶어졌다
개가 아닌 몸으로 꿈속을 더듬다가
개로 돌아가는 방법을 잊었다
바람의 뼈
시속 백 키로미터의 자동차
창밖으로 손 내밀면
병아리 한 마리를 물커덩 움켜쥐었을 때 그 느낌
바람의 살점이 오동통 손바닥 안에 만져진다
오물락 조물락 만지작거리면
바람의 뼈가 오드득 빠드득
흰 눈 뭉치는 소리를 낸다
저렇듯 살을 붙여가며
풀이며 꽃이며 나무를 만들어갈 때
아득바득 눈 뭉치는 소리가 사방천지 숲을 이룬다
바람의 뼈가 걸어나간 나뭇가지 위에
얼키설키 지은 까치집 하나
뼛속에 살을 키우는 저 집 안에서 들려오는
눈보다 더 단단히 뭉쳐지는 그 무엇의 소리
빨간 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졸음에 있다
빳빳, 헛헛한 날개로 허공을 가린 저 졸음은
겹눈으로 보는 시각의 오랜 습관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벼랑 위
붉은 가시 끝이 제 핏줄과 닮아서
잠자리는 잠자코 수혈 받고 있다
링거바늘에 고정된
저 고요의 날개!
잠자리의 불편한 잠은
하마, 꺾이기 쉬운 목을 가졌다
아름다움은 저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것
등이 붉은, 아주 붉은 현기증이다
오래 흔들린 가지 끝
저기 저 꿈속인양 졸고 있는
등이 붉은 그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위태로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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