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개꿈 / 천수호

주선화 2021. 3. 25. 10:05

개꿈

 

ㅡ 천수호

 

 

매일밤 꿈을 꾸지만

꿈속에선 개가 아니어서 꿈 밖으로 끌려나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영원히 꿈속에 살 거라 버팅기지도 않았기에

개의 사생활은 발자국을 찍어봐야 아는 것이었다

 

눈 덮인 길이거나 모래밭 길이 아니면

내가 개라는 근거도 없지만

내가 짖는 소리에 내가 놀라면서

발소리를 더 빠르게 내는 뜀박질의 나날들

 

눈과 입이 다르게 웃는 사진이

목끈 매인 개처럼 문 앞에 걸려 있다

사진관의 문지기 사진처럼 누가 들락거리는 것을 막지도 못할

심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꿈속에서 왈왈 짖던 말티즈 한 마리가

꿈 밖에서 사람 걸음을 걷는 놀라운 목격담 같은 것을

소용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슬퍼서 귀를 막고 천둥처럼 혀를 찼다

 

개는 소리를 믿고 소리를 향해 짖지만

꿈속의 나는 소리를 의심하면서 더 깊이 침묵하고 싶어졌다

개가 아닌 몸으로 꿈속을 더듬다가

개로 돌아가는 방법을 잊었다

 

 

 

바람의 뼈

 

 

시속 백 키로미터의 자동차

창밖으로 손 내밀면

병아리 한 마리를 물커덩 움켜쥐었을 때 그 느낌

바람의 살점이 오동통 손바닥 안에 만져진다

오물락 조물락 만지작거리면

바람의 뼈가 오드득 빠드득

흰 눈 뭉치는 소리를 낸다

저렇듯 살을 붙여가며

풀이며 꽃이며 나무를 만들어갈 때

아득바득 눈 뭉치는 소리가 사방천지 숲을 이룬다

바람의 뼈가 걸어나간 나뭇가지 위에

얼키설키 지은 까치집 하나

뼛속에 살을 키우는 저 집 안에서 들려오는

눈보다 더 단단히 뭉쳐지는 그 무엇의 소리

 

 

 

빨간 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졸음에 있다

 

빳빳, 헛헛한 날개로 허공을 가린 저 졸음은

겹눈으로 보는 시각의 오랜 습관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벼랑 위

붉은 가시 끝이 제 핏줄과 닮아서

잠자리는 잠자코 수혈 받고 있다

 

링거바늘에 고정된

저 고요의 날개!

잠자리의 불편한 잠은

하마, 꺾이기 쉬운 목을 가졌다

 

아름다움은 저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것

등이 붉은, 아주 붉은 현기증이다

 

오래 흔들린 가지 끝

저기 저 꿈속인양 졸고 있는

등이 붉은 그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위태로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