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새를 키우는 이유 / 송연숙

주선화 2021. 12. 16. 11:15

새를 키우는 이유

 

ㅡ송연숙

 

 

공원에서 새장을 든 노인을 만났다

지상에서의 일생이 서서히 구겨지고

느릿느릿해진 노인의 손엔

포르르 하늘 한 귀퉁이가

새장 이쪽 저쪽을 날고 있었다

 

새를 키우는 일은 하늘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지상에서의 손발을 버리고 공중의 날갯짓을 배우려는 것이 아닐까

빗방울보다도 높게 온갖 흩어지는 것들보다도 높게, 높게 날아올라 영영

하늘 한 귀퉁이 속으로 사라지는 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손끝을 조금씩 떼어 먹이며 새를 돌보는 노인

언젠가 새장을 박차고 날아오를

하늘 한 귀퉁이를 깃털구름으로 살찌우고 있었다

 

휘젖는 팔을 겨우 따라잡는 노인의 걸음, 이제 저 노인에게 남은 길이란

헐렁하게 등이 굽은 셔츠의 뒷모습만 비치는 거울 같은 것

 

조롱鳥籠을 움켜진 손

지상에서의 온갖 조롱과 모욕을 견딘 손

깃털처럼 말라 있다

 

날아가야 할 허공의 깊이를 바라보며 가쁜 숨 몰아쉴 때마다

늑골 같은 새장의 문은 조금씩 열리고 하얀 새 한마리 머리를 내민다

 

깎아 놓은  손톱 끝이

빗방울 보다 높게 낮달로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