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시(외 1편) / 주선화

주선화 2022. 6. 24. 15:58

시(외 1편)

 

ㅡ주선화

 

 

길을 걷다가

길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길은 걷기 힘들다

가볍게 스며들 듯이 가야 한다

길은 걷는 게 아니라

걷고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냥 가고 있다

생각이 편해야 길도 편하다

 

날개를 펴고 나르는 왜가리

눈에 보이지만 소리는 없다

물 위로 내려서야

크고 하얀 왜가리다

노래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지는 거다

노래인 듯 길인 듯

시가 되어 하나가 된다

 

 

 

새파란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파란 수국

거제 가는 길

파랗다 파랗게 질렸다

울음소리조차도 파랗다

 

아직 새파란 젊은 오빠 밤사이

다시 못 올 길로 허망하게 먼저 갔다

투정과 장난기 심한 어린 사내아이 둘 남겨두고

 

아무도 모르는 길 저만 알고 갔다

수국이 파랗게 부풀어 올랐다

진저리치도록 무장무장 피었다

 

수국 수국 하며 무덤까지 따라갔다

파랗게 질리도록 하늘이 울었다

 

오늘도 거제 간다

새파란 젊은 사내 둘 앞장세워 간다

 

 

 

*문학 秀 제 15호 (2022년 7,8월호)

 

 

 

 

 

 

 

 

 

 

 

 

 

 

 

 

 

 

 

 

 

 

 

 

 

 

길을 걷다가

길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길은 걷기 힘들다

가볍게 스며들 듯이 가야 한다

길은 걷는 게 아니라

걷고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냥 가고 있다

생각이 편해야 길도 편하다

 

날개를 펴고 나르는 왜가리

눈에 보이지만 소리는 없다

물 위로 내려서야

크고 하얀 왜가리다

노래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지는 거다

노래인 듯 길인 듯

시가 되어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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