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모리
ㅡ홍성남
반은 열려있고 반은 닫혀 있어요
한순간에 굳은 물고기를 생각해요
물은 아직 차가워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생각은
오늘의 놀이와 같죠
창밖에는 따뜻한 물처럼 다국적인 언어들이 흘러가죠
창과 창 사이에는 무수한 창들이 생겨나서
창이 밖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죠
저 필사의 움직임을
페트병에 담긴 물을 마셔요
물은 흐르는 중이죠
담겨 있다고 흐르는 걸 잊지는 않아요
나도 흐르는 중이죠
흐르기만 하는 중이죠
죽을 것처럼 헤엄을 쳤죠
죽을 것과 헤엄이 서로를 바라보며 멀어지도록
죽을 것은 죽을 것처럼을 밀어내고
헤엄은 헤엄을 밀어내고
언젠가 만나야 한다면
그래요 이렇게 밀어내야 하는 거죠
자숙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죽은 물고기에서 죽은 물고기를 꺼내보면
이해를 구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죠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뒷모습
우리는 키가 맞지 않고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사이
그 사이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몰라서
오늘은 가장 맑은 날이예요
사과의 자리
누구도 사랑한 적 없다는 듯
사과가 떨어진다
결말에 기대지 않겠다는 결심처럼
어디인지 묻지 않고
봉분처럼 멈추어 있다
사과나무들이 차례차례 뒤돌아 가고 있었다
그런 풍경은 좀 이상했다
어제처럼 오늘도 해가 뜨고
바람이 분다
그런 것이 자리라면
먼 곳을 보려고 나는 잔뜩 웅크린다
다시 일어서도
같은 곳을 볼 수는 없을 거야
사과는 움직이지 않고
사과를 밀어낸다
그런 안간힘으로
어디선가 기차는 떠나갈 것이다
떠나는 것과 떠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사과는 무심한 얼굴이다
그런 얼굴을 뭐라고 불러야하나
해마다 사과가 열릴 것이고
사과는 또 떨어질 것이고
떨어진 자리와 떠나온 자리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사과꽃을 피우겠지
사과꽃들 분분 날리겠지
그런 가벼움이라면
언제 그랬다는 듯
떨어진 사과를 오래 바라볼 수 있겠지
베이비 박스
여기를 좋아해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여기
아무도 미래의 세계를 말하지 않는 방식이죠
아직 모든게 따뜻해요
물고기 떼처럼 우우 몰려다니는 불안의 손가락들 사이로
엎지른 마음처럼
별도 뜨겠지요
벌써 물고기를 좋아해요
우리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라는 말은
너무 멀기도 하고, 너무 가깝기도 해서 울음이 섞여 있죠
그런 저녁이면
지느러미 속에는 유전자의 비밀이 숨어있죠
흐르는 강물을 좋아해요
내 눈물이 오늘의 이야기이니까요
어디로든 흐를 테니까요
공손한 문이 열리고 옆구리에 닿은
최초의 따뜻한 손을 기억하고 싶어요
지구가 상자이면 좋겠네요
내 어머니의 어머니인 상자
네모나서 좋고 차가워서 좋고 딱딱해서 더 좋은
동방박사의 선물상자를 믿지 않아요
경배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니까요
이해는 걸핍을 무너트리죠
네모난 창문을 좋아해요
꿈은 차가워서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옮아가요
추운 밤이 좋아요
겨울이 지나고 지난겨울이 또 지나가니까
부드럽게 돋아날 이빨이 기다려져요
상자 위에 상자 자꾸만 늘어나는 상자
피아노 건반처럼 노래 불러요
노래가 끝나면 예쁜 뼈들이 생길 거예요
유령처럼 밤이 흘러가는 게 보여요
꽃이 피듯 선명한 눈동자를 가졌어요
눈을 맞추고 싶은데
자꾸만 눈이 감겨요
잠은 우리를 또 어디에 데려다 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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