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2024년 상반기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작- 김미라, 박지현

주선화 2024. 5. 3. 08:08

가정이라는 평화 (외 3편)

 

-김미라

 

 

뼈 있는 말씀이 왔다

 

당신은 사소한 것은 사소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할 수 없다고 했다

뼈 있는 것과 뼈 없는 것은

넘어서기 힘든 극명한 간극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서둘러 치킨을 먹었다

먹고 남은 뼈가 이해의 테두리를 벗어나

다른 해석으로 쌓였다

 

어디까지가 사소한 것인지

닭에게 물어볼 생각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이해로 가는 길만큼

배달의 경로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다

 

우리는 자꾸 접촉 사고가 났다

 

각자의 방식으로 치킨을 납득하는 동안

오해는 한층 조밀해졌고

이해로 가는 경로는 흐려졌다

 

닭 한 마리가 과거에서 현재로 소환되는 동안

여전히 사소한 것은 사소할 뿐이고

우리는 각자 배달의 지도 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치킨은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다

사랑도 그렇다

 

 

 

어제

 

 

  무화과를 반으로 갈라 속을 파먹었다. 씨앗이 멋대로 접시 위로 떨어지더니 나

무로 자랐다. 원목 탁자가 나무를 이기지 못하고 다리가 부러졌다. 먹다 남은 마

가린을 꺼내 다리에 발랐다. 식물성은 식물성끼리 어울리니까 버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노란 마가린을 바른 자리에 무화과가 피었다. 꽃인지 열매인지 모르는

과일을, 탄생이 시작인지 죽음이 시작인지 모르는 내가 먹으니 정말 어울렸다.

무화과가 익는 동안 놀이터의 아이들이 자랐다. 아이들은 동물성이니까 버터가

더 어울렸다. 505호 옆집은 버터를 이용해 아이를 기르고 남은 버터를 테이블

다리에 발랐다. 저녁이면 가끔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둠이 저마다의

본명을 요구할 때 다리를 접고 베란다를 넘어 옆집으로 가는 무화과를 보았다.

그곳에서 무화과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도 나의 본명

을 잘 몰랐으니까.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여백이 길면 무섭다는 것이었다. 어쩌

면 무화과가 우리 집에서 긴 여백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에는 아직 먹지

않은 무화과가 남아 있고 어제는 조금밖에 죽지 못했다.

 

 

 

만두는 비밀을 알고 있다

 

 

만두소를 준비하는데 야맹증이 왔다

침침한 눈으로 고기를 손질하다 손톱이 썰렸는데

어디로 튀었는지 찾지 못했다

혹시라도 이물질을 들킬까

만두의 주둥이를 단단하게 봉했다

 

꽁꽁 얼어 입도 뻥끗 못하도록 냉동실에 넣었다

식구들에게 만두를 내주기 전까지

냉장고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냉동실이 각종 비밀로 가득 차던 날

만두를 꺼내 도가니에 넣고 끓였다

나는 그것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기를 바랐다

식구들은 맛있게 만두를 먹었다

나는 만두를 먹지 않았다

 

비밀은 모르고 지나갈 때 더 튼실해지는 법

사람들은 만두소와 비밀을 함께 버무린다

그리고 입구를 굳게 닫아버린다

 

만두는 그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