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세 (외 1편) / 조명희

주선화 2023. 3. 17. 14:45

세 (외 1편)

 

-조명희

 

 

엄마는 양은 밥상만한 땅뛔기에 세 들어 살았단다 이래도 저래도 산다는 게  세상에 세 들어 사는 거라 겁이 없었단다

 

나도 엄마 뱃속에 세 들어 살았단다 사글세란 그렇단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줄 수 없으면 방 빼는 거란다

 

그날도 엄마는 밭에 갔단다 팔 걷어붙이고 김장 무 몇 개 뽑고 잠시 쉬어 다시 끙, 하니 내가 뽑히더란다

 

줄 세는 없고 주인 얼굴 한번 보자고 서둘러 나왔단다

 

세상에 나와 세 치르다 한 시절 가고 탯줄 묻은 자리 오동나무 꽃만 환장하더란다

 

나도 환장한단다

 

 

 

도다리 쑥국

 

 

언니,

우리 통영 가요

 

첫눈 오는 날 아는 동생이 통영에 가잔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도다리쑥국을 먹잔다

 

그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꼭 통영엘 간대요

 

나는 통영에 여러 번 가 봤고 중앙시장에서 도다리쑥덕을 먹었고 함께한 그 맛을 이제는 잊을 만한데

 

언제 갈까?

 

동생은 이른 봄에 가자 하고

나는 겨울 가기 전에 가자 한다

 

언니, 그거 알아요?

가자미를 입에 넣고 국물을 뜨면 입안에 바다가 요동친대요 그것도 쑥 향으로

그 사람이 그랬어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과

이미 끝장난 사람 둘이 앉아 통영에 가자 한다

 

도다리는 한쪽으로 눈이 쏠려 있다는 걸 알 듯 우리도 이제는 사람에 대해 알 때가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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