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외 1편)
-조명희
엄마는 양은 밥상만한 땅뛔기에 세 들어 살았단다 이래도 저래도 산다는 게 세상에 세 들어 사는 거라 겁이 없었단다
나도 엄마 뱃속에 세 들어 살았단다 사글세란 그렇단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줄 수 없으면 방 빼는 거란다
그날도 엄마는 밭에 갔단다 팔 걷어붙이고 김장 무 몇 개 뽑고 잠시 쉬어 다시 끙, 하니 내가 뽑히더란다
줄 세는 없고 주인 얼굴 한번 보자고 서둘러 나왔단다
세상에 나와 세 치르다 한 시절 가고 탯줄 묻은 자리 오동나무 꽃만 환장하더란다
나도 환장한단다
도다리 쑥국
언니,
우리 통영 가요
첫눈 오는 날 아는 동생이 통영에 가잔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도다리쑥국을 먹잔다
그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꼭 통영엘 간대요
나는 통영에 여러 번 가 봤고 중앙시장에서 도다리쑥덕을 먹었고 함께한 그 맛을 이제는 잊을 만한데
언제 갈까?
동생은 이른 봄에 가자 하고
나는 겨울 가기 전에 가자 한다
언니, 그거 알아요?
가자미를 입에 넣고 국물을 뜨면 입안에 바다가 요동친대요 그것도 쑥 향으로
그 사람이 그랬어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과
이미 끝장난 사람 둘이 앉아 통영에 가자 한다
도다리는 한쪽으로 눈이 쏠려 있다는 걸 알 듯 우리도 이제는 사람에 대해 알 때가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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