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랩소디
-진혜진
우산이 감옥이 될 때
예고 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손잡이는 피하지
못할 것에 잡혀 있다
비를 펼치면 우산이 되고 우산을 펼치면 감옥
수감된 몸에서 목걸이 발찌는 창살 소리를 낸다
소나기 속의 소나기로 나는 흠뻑 젖는다
보도블록 위의 빗방울
절반은 나의 울음으로 남고 절반은 땅의 심장에
커다란 구멍을 낼 것이다
버스 정류장 앞 웅덩이가
막차를 기다리는 새벽 2시의 속수무책과 만나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빗방울 여러분!
심장이 없고 웃기만 하는 물의 가면을
벗기시겠습니까
젖어서 만신창이가 된 표정을 바라만 보고
있겠습니까
어떤 상실은 끝보다 시작이 더 아파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끝이 날까
두 줄을 긋듯 질주하는 차가 나를 후경에 밀치고
검은 우산과 정차 없는 바퀴와 폭우가 만들어내는
피날레
젖어서 죄가 되는 빗방울
용서가 잠겨있는 빗방울
우산은 비를 따라 용서 바깥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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