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전개
-최지은
한 여인이 유모차를 끌고 여름 속을 걸어간다
유모차 속의 아이는 여름을 손에 쥐고서
여인은 아이의 여름을 감싸며
눈을 맞춘다
바라보는 동안에도 아이는 자라고
아이와 아이 엄마는 함께 쥔 여름 안에서 더 닮아가
같은 여름을 기르고
나에게도 나를 기른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나를 기른 사람과 닮아서 나를 기른 사람에게 깃들어
나의 여름은 나를 기른 사람과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기르고 있다
점점 더 닮아가는 방식으로
같이 죽어가는 것도 같고
같이 살아 있는 것도 같고
같은 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은 여름
바라보기만 했는데
여름이었다
빗방울 떨어지고
잎이 흔들리고
숲은 젖어가고
아이와 아이 엄마는 사라져가는
바라보기만 했는데
저질러버린 일들이 있었다
텅 빈 자리
투명한 것을 지나치며
동그랗게 불러오는 배를 감싸며
잠시 한걸음 물러나 멈춘 채
다시
여름 속으로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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