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여름의 전개 / 최지은

주선화 2023. 8. 18. 13:37

여름의 전개

 

-최지은

 

 

한 여인이 유모차를 끌고 여름 속을 걸어간다

 

유모차 속의 아이는 여름을 손에 쥐고서

여인은 아이의 여름을 감싸며

눈을 맞춘다

 

바라보는 동안에도 아이는 자라고

아이와 아이 엄마는 함께 쥔 여름 안에서 더 닮아가

같은 여름을 기르고

 

나에게도 나를 기른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나를 기른 사람과 닮아서 나를 기른 사람에게 깃들어

나의 여름은 나를 기른 사람과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기르고 있다

점점 더 닮아가는 방식으로

 

같이 죽어가는 것도 같고

같이 살아 있는 것도 같고

 

같은 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은 여름

 

바라보기만 했는데

 

여름이었다

 

빗방울 떨어지고

잎이 흔들리고

숲은 젖어가고

아이와 아이 엄마는 사라져가는

 

바라보기만 했는데

저질러버린 일들이 있었다

 

텅 빈 자리

 

투명한 것을 지나치며

동그랗게 불러오는 배를 감싸며

 

잠시 한걸음 물러나 멈춘 채

 

다시

여름 속으로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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