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오늘은 바게트 / 데이지 김

주선화 2024. 6. 15. 08:43

오늘은 바게트

 

-데이지 김

 

 

처음 슬픔은 구름을 조금 떼어먹은 맛이다

 

건기의 여름 나무 아래

이름 없는 연녹색 들풀 사이를 챙이 긴 모자를 쓴 그림자를 데리고 걷는다

 

구름을 빠져나온 일기예보 속으로

각자의 슬픔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슬픔의 반죽이 숙성될 때까지 바짝 마른 바람이 부푼다

계절이 바뀌어도 같은 계절엔 앞면도 뒷면도 딱딱해지는 얼굴이 된다

 

뜯어먹은 빵 속으로 쏟아지는 비

 

바게트가 더 바게트가 될 때까지

발을 숨긴 소나기 속을 뛰기로 한다

 

평생 모아 온 슬픔의 방울들이 쏟아지며 금을 긋는 들판

슬픔을 다 살아버리고 해를 다 먹어버리고 발효된 풀의 향기

 

굳었던 껍질이 의심없이 찢어진다

 

입안에 고인 슬픔이 무른 살처럼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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