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소가죽 구두 / 이삼현

주선화 2024. 7. 5. 09:59

소가죽 구두

 

-이삼현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사내는 이름 대신 기죽 구두를 남겼다

 

누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한데 엉켜

날마다 갈아엎어도 달라질 게 하나 없는 세상

풀을 뜯던 앞니가 몽땅 빠져서야

날카롭게 세운 발톱이 죄 닳아서야

 

뼈만 남은 사내와

가죽만 남아 구두가 된 소가 만나

멍에를 벗고 외출할 수 있었다

 

기다렸던 오일장이면

소가죽 속에 발을 묻고

질끈 구두끈을 묶던 사내

 

막걸리 몇 잔에 취해 흥얼거리며

저를 몰고 돌아오던 신작로와 골목길엔

개망초가 피어 지천인데

 

사내와 소는 보이지 않고

폐가의 주인이라는 듯 마루 밑에

먼지 낀 한 켤레 소 울음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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