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죽 구두
-이삼현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사내는 이름 대신 기죽 구두를 남겼다
누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한데 엉켜
날마다 갈아엎어도 달라질 게 하나 없는 세상
풀을 뜯던 앞니가 몽땅 빠져서야
날카롭게 세운 발톱이 죄 닳아서야
뼈만 남은 사내와
가죽만 남아 구두가 된 소가 만나
멍에를 벗고 외출할 수 있었다
기다렸던 오일장이면
소가죽 속에 발을 묻고
질끈 구두끈을 묶던 사내
막걸리 몇 잔에 취해 흥얼거리며
저를 몰고 돌아오던 신작로와 골목길엔
개망초가 피어 지천인데
사내와 소는 보이지 않고
폐가의 주인이라는 듯 마루 밑에
먼지 낀 한 켤레 소 울음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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