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자매들
- 김재근
이렇게 그릴 데가 많았나
이렇게 고칠 때가 많았나
어쩌다 마귀할멈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데
거울아 거울아
들여다볼수록 얼굴은 딱딱해진다
어디까지 참아야 하나?
어디까지 만져야 하나?
시간을 놓친 얼굴은 먼 얼굴 같아
길 잃은 낙타 같아
누구도 도울 수 없는데
얼굴을 낳을수록 묵음이 되어가는 자매
더 그릴 데도
더 고칠 여백도 없어
번갈아가며
서로를 들여다보는데
자신의 얼굴을 수소문하는데
이렇게 참을성 없는 얼굴은 처음이야
이렇게 고치고 지우는 얼굴은 우리뿐일걸
들여다볼수록 위장술은 늘어난다
거울아 거울아
오늘은 어떤 얼굴을 낳아줄래
더 도울 얼굴이 없어 거울도 힘이 드는데
자매는 포기할 수 없다
호호호
입김 불며
속눈썹을 붙이는 자매
이게 최선일까
이렇게 정직한 얼굴은 우리뿐인가
매일매일 자매는 태어나고
매일매일 자매는 늘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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