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지르기 전에
-김복희
안녕 내가 집을 불태우려고 해
그런데 우리 집을 불태우면
옆집이 불탄다고 해
그런데 옆집이 불타면
그 옆집도 불탄다고 해
실로
검은
그림을 위한 밑 색을 칠하려고 해
그러러면
잘 가
석양
잘 가
지난 밤 정전
잘 가
어린애의 불
잘 가
여자의 피
잘 가
피에 젖은 물
잘 가 잘 가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까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잘 가
살점을 베려면 피를 흘려야 하듯이
나는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거야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과 잔가지와 전선과 높은 건물의 끄트머리와
내가
세상을 잠깐 어둡게 할 수 있다는 것
반가워
작은 새
반가워 잔가지
반가워 전선
반가워 반가워
아주 좁은 악마의 유리병 속으로
들어가듯이
안녕
환영해
이런 건 삶이 아니라고
불 지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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