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나 원래 바이킹 잘 타 / 여세실

주선화 2024. 10. 9. 08:10

나 원래 바이킹 잘 타
 
- 여세실
 
 
거짓말이야
나 사실 바이킹 잘 타
 
소원이라고 해서
바이킹을 같이 타는 게
 
안전바가 내려가고 우리가 지나쳤던 풍경이
발밑에 서서히 떠오를 때
 
눈을 뜨고
아래를 봐
 
눈앞에 펼쳐져 닥쳐오는
지붕들
이별의 모서리들
모두 손톱만큼 작아보일 테니까
 
그날의 일기예보에는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진짜일까?
내가 우산이 없었다는 말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미래의 어깨가 젖어가는 걸
바라보고 서 있을 수 있지
 
바람이 불었지
대관람차가 한 바퀴 도는 동안
너는 또 한 번 태어나고
 
오늘의 너와는 한 웅큼만 사랑하고
한 주먹만 이별하고
 
내일부터는
빗물에게로
 
바이킹을 모는 바람에게로
내 몸을 던져버리는 공중에게로
나는 갈게
 
그 너머에서도
너는 돌을 가지고도
돌의 야기를 지어
웃음 짓는 사람
 
길고 긴 밤과 낮 동안에도
필란드로 스웨덴으로
현관문 하나만 지나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
 
홀로 아주 깊이 잠에
빠져드는 사람
 
하고 많은 소원 중에서도
바이킹을 고르는 사람
 
공중에 몸을 걸고
거꾸로 매달려
배꼽 잡고 웃는 사람
 
떨어지는
사선의 미래에게로
나는 한껏 기울어지고
 
지금으로부터 누가 더 멀리
헤어져볼 수 있는지
내기를 해보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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