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구름 이정표 / 홍성주

주선화 2024. 10. 14. 14:26

구름 이정표

 

- 홍성주

 

 

당신은 빨라지는데

나는 느려지고, 뒤돌아

당신은 느려지는데 나는 더욱 빨라지고

어디에 서 있는 건지

솟아버릴까 아니면 꺼져버릴까

 

나는 누구였나요

엄마 뱃속 이전의 어디에서 날 데려왔나요

어쩌면 내일쯤 모레쯤

뱃속으로 당신을 찾으러 갈지도 몰라요

여긴 아무래도 가뭄이 심한걸요

나뭇잎의 발목이 톡톡 부러져요

 

드나들던 감옥으로 돌아가야 해요

함께 자란 작은 꽃들을 모두 잘라버렸거든요

거긴 뼈 없는 울타리가 춤을 추지요

유령의 고향인 영안실을 가리켜요

길은 어디로든 이어지지요

잠시만 쉬고 있어요

새싹이 손톱을 내밀 때까지

 

으레 가실 건가요

죽음의 의식은 항상 명료해요

앞은 없고요 지나온 뒤편만 보여요

소리 없는 소멸 뒤에는

거짓말이 참말을 잡아먹지요

당신은 언제나 옳았어요

우린 서로에게 멀어질 수 있을까요

 

한 꼬집 볼우물을 몰고 온 햇살의

고민은 하나 - 웃을까, 말까

아무래도 우리는 웃음을

이전 세상에 두고 온 모양이에요

당신은 누구세요

지나는 사람들은 왜 울지도 않는 걸까요

그들이 향하는 길은 옳은가요 - 무슨 상관이람

 

걱정 마세요 엄마

엄마 뱃속에선 나를 만난 적이 없대요

바람의 발가락이 움찔거려요

보이지 않는 구름이 이제야 웃어요

이정표도 때로는 방향을 잃는다고요

 

어딜까요, 현 위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