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이야기의 신 / 김진선

주선화 2024. 10. 5. 08:25

이야기의 신 (외 1편)

 

- 김진선

 

 

기도할 때 감긴 눈 속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대신 밝힌 초 앞에 굳어가는

촛농 모양 보면 길흉 정도는 알 수 있더라

 

집 얻어 나간 이모가 몇달이 지나 일러준 것들

 

말 뒤에 늘 알 수 있다

보인다 하면서

 

처음 보는 이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있을 때

 

신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겨울 눈처럼 새하얀 토끼가 굶어 죽어 태어난 게 나라고

이모의 입을 빌려 이모의 신이 한 말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신이라니

 

이모가 하는 말은 이모의 음성으로 들리다가도 이모의 서사만은 아니었는데

그 순간 믿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깃드는 것으로

 

다 안다

보고 듣고 계신다

 

그때 이모는 말을 많이 했는데

쌓이고 쌓이는 눈과

 

이모와 신

 

두려움은 소리도 없이 자라나 유일해지고

우리의 생활을 가지며 깊어가는

 

기계를 울리는 중환자실에 누워 이모는

이모의 신을 떠올렸을까 혼자된 신 몇번의 삶 물끄러미

 

믿는다는 의식 없이 믿었나

이모의 신은 이모를 지켜주었나

이모가 모시는 신은 어디로 갔을려나

그런게 궁금해서

 

이모는 신이 되었다

언제 신이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

 

이렇게 쓰지만

 

아무래도 세상 사람의 수만큼

신의 세상도 있는 거라면

 

이제는 내가 이야기를 지어낼 차례인 것 같아서

 

 

아무는 동안

 

 

 

바람이 유독 심한 날에는

찾아오는 사람 없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 보이는 돌

위에 놓인 돌

바람 위에 놓인 누군가의 바람 같은 거

몇해 전 갔던 절은 불이 나고

승려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내려왔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비탈길을 천천히

걷다가 보이는 돌

망가진 걸 내밀어도 웃을 수 있다면

손에 쥐고 가장 멀리 던진 돌이 있다

물속 가라앉은 돌

이끼가 시간을 덮고 뭉갤 때

돌은 연약한 것

잃어버린 적 없는 것

돌의 손 잡고

신중하게 소원 비는 사람

잡은 손 놓으면 먼저 흔들리는 사람

앞에 돌

아름답게 무너질 줄 모르는 것

생각하다가

아프기만 했다

돌끼리 부딧치는 소리

간밤에 쏟아지던 기척 같아서

더 아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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