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모음의 무게
- 이형옥
이른 눈을 뜬 목련 보러 갈까
한 데 잠든 마른 수국 보러 갈까
간판 내린 용궁당 아궁이 옆에 앉아
갯물 젖은 바지나 말리러 갈까
두북두북 포개지는 눈의 무게
결정에 달라붙은 기억들로 휘청인다
듣지 못한 내일을 엿보려다
바람 일어 울음 날리는 먼바다를 품는다
당신의 안부를 닮은 눈 내리는 날
저마다의 속도로 산란하는 빛의 음표는
읽을 수 없는 악보가 되어 흩어지고
헨델의 미뉴에트*만 느리게 흐른다
쌓이지 않는 계절은 소리없이 날리고
색을 잃은 갈잎들 사이
쇠똥구리가 되어버린 날
하릴없는 가디림은 허기를 닮았던가
혀끝 돌기 위에 닿는
부르지 못하는 모음들의 가벼움이란
당신을 닮은 눈을 맞는다
어쩌면 내게는 영원한 겨울
끊어내지 못한 하루의 무게로 휘청이는
두북두북 눈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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