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눈, 모음의 무게 / 이형옥

주선화 2024. 11. 18. 08:19

눈, 모음의 무게

 

- 이형옥

 

 

이른 눈을 뜬 목련 보러 갈까

한 데 잠든 마른 수국 보러 갈까

 

간판 내린 용궁당 아궁이 옆에 앉아

갯물 젖은 바지나 말리러 갈까

 

두북두북 포개지는 눈의 무게

결정에 달라붙은 기억들로 휘청인다

 

듣지 못한 내일을 엿보려다

바람 일어 울음 날리는 먼바다를 품는다

 

당신의 안부를 닮은 눈 내리는 날

저마다의 속도로 산란하는 빛의 음표는

 

읽을 수 없는 악보가 되어 흩어지고

헨델의 미뉴에트*만 느리게 흐른다

 

쌓이지 않는 계절은 소리없이 날리고

색을 잃은 갈잎들 사이

 

쇠똥구리가 되어버린 날

하릴없는 가디림은 허기를 닮았던가

 

혀끝 돌기 위에 닿는

부르지 못하는 모음들의 가벼움이란

 

당신을 닮은 눈을 맞는다

어쩌면 내게는 영원한 겨울

 

끊어내지 못한 하루의 무게로 휘청이는

두북두북 눈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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