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밭
-박성우
씨앗을 넣은 지 얼마나 되었던가
메밀 줄기가 오밀조밀, 꽃을 피운다
한낮 볕에 이파리를 늘어트리면서도
가늘고 여린 손을 뻗어 꽃을 내민다
해가 어지간히 넘어간 늦은 오후,
호스를 밭머리로 길게 당겨
소나무 산자락 메밀밭에 물을 준다
여느 때처럼 별생각 없이 물을 틀고
밭이랑 가운데로 물을 뿌리는 찰나,
배추흰나비 떼가 일제히 솟구쳐 오른다
실로폰 소리처럼 경쾌하게 튕겨 올라
메밀꽃밭을 배추흰나비 밭으로 바꾼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일순간에
내 안쪽으로도 하얗게 치고 들어와
나조차도 메밀꽃밭 위로 띄워 올린다
하얗게 일렁이는 마음은 멈추지 않고
물 호스를 그냥 거두어야 할지
주던 물을 마저 주어야 할지,
궁리하던 사이에도 배추흰나비 떼는
팔랑팔랑 붕붕, 나를 잡고 솟구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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