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트럭 레미콘 트럭/이동호 아버지는 신이셨다 트럭에 지구를 올려놓고 자주 출타 중이셨다. 지구는 짐칸에서 저 홀로 빙빙 돌아가고,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저녁 무렵 에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작업복은 은하수에 젖어 반짝이고, 뉴스에서 열대야가 자주 거론될 때에는, 북극의 빙하를 까만 비닐 봉지에 가득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8.21
칸나 /송찬호 칸나/송찬호 드럼통 반 잘라 엎어놓고 칸나는 여기서 노래를 하였소 초록 기타 하나 들고 동전통 앞에 놓고 가다 멈춰 듣는 이 없어도 항상 발갛게 목이 부은 칸나 그의 로드 매니저 낡은 여행용 가방은 처마 아래에서 저렇게 비에 젖어 울고 있는데 그리고 칸나는 해질녘이면 이곳 창가에 앉아 가끔씩..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8.15
엄마, 카페테리아에 가다 엄마, 까페테리아에 가다 / 오은 엄마 에스프레소,라고 발음해 봐요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 두 스푼은 잠시 잊어버려요 우리가 가는 곳은 다방이 아니에요 꽃무늬 원피스는 제발, 시장에 가는 것이 아니래두요 엄마 검은 정장에 마름모 브로치를 달아요 오늘은 귀해 보여야 해요 싸구려 가루분은 집어..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8.13
지퍼의 구조 지퍼의 구조/김지녀 뜨거운 계단들이 열리고 있다 나의 목까지 밀고 들어오는 진흙처럼 계단은 가장 깊은 곳까지 나를 잡아당겨놓았다 나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생각하는 자세로 오해받기 적당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어떠한 생각도 자세도 없다 움직일수록 계단들은 더 깊게 열린다 이것은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8.08
연필의 간 연필의 간/김경주 연필 속에서 간이 흘러나온다 간 속의 노란 돌가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 돌가루 연필 속에서 탄광이 쏟아져 나온다 탄광을 파내어 간을 찾는 자, 시를 쓴다 해골이 어조를 남기고 거울 속에서 웃는다 연필은 잡념의 생식기 푸른 먼지 하나 허리를 흔들며 사라져가고 헐리고 있..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8.06
치마의 전설 치마의 전설/김륭 - 바지만 입는다고 아들이 되거나 처자식을 거느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되는 일마저 실패했다 나는, 지금 나무그늘 밑에 앉아 백 년째 울고 있다 빨랫줄에서 떨어진 빨래로 읽었다면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함부로 몸 굴리거나 퍼덕대지 않으리란 믿음은 언제나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7.29
등 /이낙봉 등 /이낙봉 내 등이 보고 싶다, 비누칠을 하면서, 비누 거품 속으로 눈물 같은 하루를 흘려보내면서, 어떤 표정으로 휴식을 취하는지, 내일도 물론 안녕할지, 한번쯤 정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내 몸이 가볍고 부드럽다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줄줄이 떨어져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7.27
사하촌의 봄 /유홍준 사하촌의 봄 /유홍준 곰팡이가 피었다 곰팡이가 슬었다 연화대 위 부처의 눈동자에 허옇게 백태가 꼈다 시치미 뚝 떼고 제 똥 위에 꼿꼿하게 앉아 있는 부처, 저 지독한 부처의 똥냄새를 지우려고 날이면 날마다 피워대는 대웅전의 싸구려 향냄새 뭐라고, 대웅전이 아니라 여긴 영안실이라고? 뭐라고,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7.23
스피노자의 안경 /정다혜 스피노자의 안경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내의 안경을 닦는 남자 오늘도 안경을 닦아 잠든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 그가 안경을 닦는 일은 잃어버린 내 눈을 닦는 일 그리하여 나는 세상에서 가장 푸른 새벽과 아침을 맞이하지만 그때마다 아픔의 무늬 닦아내려고 그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켰을까 생..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7.22
지붕에 관한 시 3편 처마 밑에서 유종인 추억을 켜드릴까요 버림받음을 다시 받아올까요 저녁 불빛이 오면 저는 천년 전으로 꽃 피러 가겠습니다 빗속을 뚫고 제 뿌리가 가 닿는 곳, 당신은 여전히 滿開한 작약꽃들을 담은 제 마당이었습니다 부옇게 김 서린 안경 너머에 당신은 눈물의 球根 같은 눈알을 열심히 굴리고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