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최승자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삼십삼 세 미혼 고독녀의 봄 실업자의 봄 납세 의무자의 봄. 봄에는 산천초목이 되살아나고 쓰레기들도 싱싱하게 자라나고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이 내 입안에서 오물이 자꾸 커 간다. 믿을 수 없이, 기적처럼, 벌써 터널만큼 늘어난 내 목구멍 속으로 쉴 새 없..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3.20
너에게 / 최승자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최승자/‘너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가장 단순하고 근원적인 전언은 ‘네가 왔으면 좋겠다’이다. 이 투명한 욕망은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치명적이다’. 네가 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치명적이거나, 내가 치명적이기 때문에 너의 부재가 더욱 날카롭게..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3.16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 이성복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이성복/‘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너의 움직임을. 너의 소리를. 마음이 움직였으므로, 마음이 우우우 바람의 소리를 내었으므로 나는 그 시절 사랑에 취해 있었구나. 내 마음과 내가 가장 가까웠던 시절이었구..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3.08
부도난 치부책 / 김륭 부도난 치부책/김륭 1. 감자밭에서 감자가 고구마밭에서 고구마가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침 발라 넘길 수 없는 책갈피 속에서 밥 먹고 쉬쉬 오줌 누고 똥 누던 어머니 못난 돼지감자 하나, 소불알 같은 고구마 하나 굴러 떼굴떼굴 돌멩이처럼 굴러와 미처 책을 다 읽지 못한 햇살의 눈두덩을 보여주었..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3.06
나는 잊고자 / 한용운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한용운/‘나는 잊고자’ 국민 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이라면 누구나 만해 한용운의 시가 역설과 반어의 수사학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령 그가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님의 침묵’)라고 했을 때, 우리는 대상의 부재를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3.05
사랑 / 김수영 (동아일보 현대시 100선)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김수영/‘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그릴 수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2.23
물소리 / 조혜정 물소리 조혜정 비가 오는데 굳이 화분에 물을 줄 필요가 있니? 비는 그냥 내리는 거구요 이 화분은 제가 주는 물을 먹고 자라거든요 ―말괄량이 삐삐 물소리가 들렸던가 꿈 바깥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가 똑, 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차오르는 물소리와 함께 밀려오고 밀려갔던가 물소리는 바닥을 적시고..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2.19
문의 마을에 가서 / 고은 고은/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2.19
반딧불 / 이상화 깜빡이는 반딧불은 사랑의 운동 형식을 밤하늘에 펼쳐 보인다. 유행가 가사에 잘 어울리는 깜빡이는 가로등이나 네온사인이 그렇듯이 ‘깜빡임’은 내 마음속의 조명장치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대상이 내게 보내는 사랑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간절한 구애의 표현 같기도 하고 사랑을 단념하..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2.17
동아일보 현대시 100년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