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문수 / 조정인 슬픔의 문수 / 조정인 허리께로 오는 낮은 대문, 집 둘레에는 빨강 노랑 자잘한 꽃들이 가 꾸어져 있습니다 떠오르다 가라앉곤 하는 섬 하나, 심하게 다리 저는 남자가 그리로 가더니 한참을 구겨져 앉습니다 고개를 꺾고 꽃들을 들여다보는 어깨 위로 투명한 얼룩 같은 햇살이 어롱집니다 남자가 일어..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1.02
살아있는 지팡이 / 홍일표 살아있는 지팡이 / 홍일표 땅에 꽂은 지팡이가 고령의 나무가 되어 자란다 아무도 믿지 않는 사실, 나는 나무의 부활을 믿는다 죽은 나무에 싹이 나는 건 지팡이를 쥐고 있던 이의 손에서 흘러나온 맥박이 갈라진 나무 틈으로 몰래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은밀히 내통했기 때문이다 잘린 몸퉁이 마지막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7.12.25
꽃의 재발견 / 김륭 꽃의 재발견 / 김륭 새봄, 누군가 또 이사를 간다 재개발지구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야 코딱지 후비며 고층아파트로 우뚝 서겠지만 개발될 수없는 가난을 짊어진 양지전파상 김만복씨도 떠나고 흠흠 낡은 가죽소파 하나 버려져 있다 좀더 평수 넓은 집을 궁리하던 궁둥이들이 깨진 화분처럼 올려져 있..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7.12.21
토끼 / 이정록 토끼/이정록 열살이 되었을 때 처녀 선생님한테 토끼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그날부터 세상의 모든 초록은 토끼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이파리로 나누어 졌다 열여섯 살 때 토끼보다도 하얀 첫사랑이 왔다 이 년 동안 그가 오는 길목을 올무처럼 서성거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던 토끼 한 마..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7.12.20
새의 얼굴 / 이민하 새의 얼굴/이 민 하 날개를 저을 때와 날개를 접을 때 새는 어떤 표정일까 날개는 새를 소유한다 타이머가 날개를 소유하듯이 누구나 태어난 채로 오늘은 나의 생일이 아니다 축하해 다오 문 앞에 사탕처럼 들러붙는 꽃들 말고 죽은 새도 괜찮다 선물을 다오 열두 살 때 처음 내 방에 날아든 새 한 마리..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7.12.20
황태 / 김륭 황태/김륭 아버지 바지가 빨랫줄에 걸려있다. 헐렁헐렁한 바지를 빠져나간 아버지는 젊은 운전기사에게 멱살 잡혀있었지 만 편안해 보였다. 아니, 어르신 낮술 꽤나 드셨으면 집에 가 주무시지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버스를 가로막으려 했다고 벌레 씹은 얼굴로 투덜거리는 金순경 입가로 스멀스..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7.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