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사는 토끼가 보인다 /김지유 달에 사는 토끼가 보인다/김지유 괘종시계가 열한 번째 울고 멈춘 응접실에 앉아 유리창을 응시할 때 낯선 토끼, 홍당무 내밀며 말한다 난 달에 살아 이걸 먹고 싶어 여기에 왔어 아주 오랫동안 마카로니만 먹었거든 가끔씩 희고 단 유즙을 뿌려댈 때면 각기 유성은 그것으로, 자기만의 길들을 빨아들..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7.01
나무의 앞 /고은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고은/‘나무의 앞’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고은을 특징짓는 비평적 수사는 특유의 정력적 다작(多作), 장르 사이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형식의 다양성, 실천적 전위를 오래도록 가능케 한 행동적 에너지 등이다. 이 모든 규정은 한결같이 그를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21
낙타 / 신경림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17
바다로 가득 찬 책 / 강기원 바다로 가득 찬 책 네가 한 권의 책이라면 이러할 것이네 첫 장을 넘기자마자 출렁, 범람하는 물 너를 쓰다듬을 때마다 나는 자꾸 깎이네 점점 넓어지는 틈 속으로 무심히 드나드는 너의 체온에 나는 녹았다 얼기를 되풀이하네 모래펄에 멈춰 서서 해연을 향해 보내는 나의 음파는 대륙붕을 벗어나지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17
봄을 울다 /최영숙 봄을 울다 - 백련사 우물가 쉬잇, 조용히 해, 우물 옆 명부전에 한 여인이 등을 보이고 앉았다 사람소리에 뒤돌아보는 여인의 눈알이 흠뻑 울고 난 토끼처럼 빨갛다 젊어 아직은 등이 곧은 여인의 가부좌 튼 무릎은 어느 눈물의 아픈 뼈마디인가 두레박을 풀어 바닥에 차오르는 맑은 물 한 바가지를 퍼..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17
줄탁 /김지하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김지하/‘줄탁’ 사랑의 때는 언제인가? 여기 사랑이 탄생하는 시간에 대한 예감을 만날 수 있다. ‘저녁 몸’은 몸이 한낮의 열도를 뒤로하고 스스로 안으로 접어드는 때, 혹은 소멸의 시간을 준비하는 때, 그 시간에 ‘회음부’와 ‘가슴 복판’, ‘배꼽’과 ‘뇌’ 속에서도..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13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신경림/‘가난한 사랑 노래’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1980년대의 한 노동자, 이웃의 가난한 한 젊은이가 절규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두려움을, 그리움을, 아, 나의 사랑을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그가 제 마음에 못을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07
도봉 /박두진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박두진/‘도봉’ 우리 시사에서 이육사 유치환과 함께 남성적 음역을 뚜렷이 개척해 온 혜산 박두진이, 매우 드물게 존재론적 고독과 사랑의 비애를 노래한 초기 명편이다.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펴낸 ‘청록집’(1946년)에 실려 있는 이 아름다운 시편은 ‘산새’도 ‘구름’도..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03
'그의 반' /정지용 현대시 100년-사랑의 詩]정지용/‘그의 반’ ‘그’를 누구라고 말해도 좋다. 일반적인 해석처럼 ‘그’를 종교적인 의미의 절대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사랑하는 당신-연인이어도 된다. 내가 사랑을 갖는다는 것은 은밀한 하나의 종교를 갖는 것이고, 사랑이란 나 혼자의 힘만으로 ..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6.02
꽃피는 애인들을 위한 노래 /정현종 정현종/'꽃피는 애인들을 위한 노래'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만월의 흰 손가락들이 만지는 오늘밤은 검은 피부다. 한없이 넓어질 수 있는 피부, ‘한없이 깊어질 수 있는’ 피부다. 밤은 성감대처럼 민감하고 꽃처럼 피어나는 신경세포들이 만개한 검은 피부다. 정현종의 시에서 밤은 사랑의 배경..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2008.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