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주선화 2008. 1. 21. 11:34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녁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處女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萬里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부시시 부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人跡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1971년)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강은교시인의 " 사랑법" 시에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고 /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 (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라고 노래했듯이...(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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