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염전 /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2007년>
* 바닷물을 끌어다가 삼일 정도 가둬두면 바닥에 소금 알갱이가 뭉치기 시작한다
가만히 고인 바닷물이 제 안의 소금을 응결시키고 잇는 저녁의 염전을 볼 때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한다
노을 속으로 바닷물이 건너는 염전에 서면, 죽음과 소멸을 건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만 같다
스미고, 비치고, 번지고, 가라앉고, 퍼지는 술어의 움직임 속에서 하얗게 증발하는 허공 속 흰 눈 같이 , 아니 깊은 바다 속 영혼같이 .....
김경주시인은 젊다 2003년에 등단하여 2007년 첫시집을 냈으니
시력 또한 젊다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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