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무꽃이 아프다

주선화 2008. 9. 16. 14:19

무꽃이 아프다  /  최광임



식탁 위 무꽃 피었다



겨우내 비닐봉지에 묶어두었던 무우

꺼내놓고 칼집을 낸다 기억의 시신경에

뚫린 길들 바람의 집이다 온몸 신열로

눈뜨는 밤 어둠을 휘젓고 다니는

그때 많은 것들 몸을 관통해 지나가곤 한다

크고 작은 상처만큼 구멍 뚫린 몸둥이

피고 지고 피는 봄날의 꽃밭에서 무 속 같은 즈음에

또 얼마나 많은 흙밭의 지난날들 끌어안고 차가운 세상에서

싸늘했을지,  유즙같이 눈 뜨며 잎을 밀어올리고

햇살이 세우는 쪽으로 대궁 기울이다 벙글던 꽃잎들

온 들녘 목 놓아 부르던 바람의 노래 꿈꾸는지 기억이란

흔적뿐이어서 온통 바람이 지나간 길뿐이어서

무릎을 감싸안은 듯 한쪽으로 기울인 대궁등

바람의 몸에 기둥 세운 꽃



우기를 느끼며 어깨 주무르는 날이면

내 몸에서도 바람소리 난다 생애 언제 또 꽃의

날들이라고 해야 하는지 막연한 즈음, 샛강이 멀어보인다

자꾸 저 꽃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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