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꽃이 아프다 / 최광임
식탁 위 무꽃 피었다
겨우내 비닐봉지에 묶어두었던 무우
꺼내놓고 칼집을 낸다 기억의 시신경에
뚫린 길들 바람의 집이다 온몸 신열로
눈뜨는 밤 어둠을 휘젓고 다니는
그때 많은 것들 몸을 관통해 지나가곤 한다
크고 작은 상처만큼 구멍 뚫린 몸둥이
피고 지고 피는 봄날의 꽃밭에서 무 속 같은 즈음에
또 얼마나 많은 흙밭의 지난날들 끌어안고 차가운 세상에서
싸늘했을지, 유즙같이 눈 뜨며 잎을 밀어올리고
햇살이 세우는 쪽으로 대궁 기울이다 벙글던 꽃잎들
온 들녘 목 놓아 부르던 바람의 노래 꿈꾸는지 기억이란
흔적뿐이어서 온통 바람이 지나간 길뿐이어서
무릎을 감싸안은 듯 한쪽으로 기울인 대궁등
바람의 몸에 기둥 세운 꽃
우기를 느끼며 어깨 주무르는 날이면
내 몸에서도 바람소리 난다 생애 언제 또 꽃의
날들이라고 해야 하는지 막연한 즈음, 샛강이 멀어보인다
자꾸 저 꽃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