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트롬세탁기에 관한 보고서 / 강영은

주선화 2010. 4. 14. 11:14

트롬세탁이에 관한 보고서 / 강영은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우레 . 번개가 칠 때

벼락과 함께 땅에 떨어져 수목을 찢어놓고

사람과 가축을 헤친다는 뇌수 한 마리,

우리 집 세탁실로 들어왔다

 

들어온 날부터 외눈박이 눈을 부라리더니

남편을 삼키고 나를 삼키고 아이들을 집어 삼킨다

열대성 고기압 쏟아지는 220볼트의 이빨이

뒤따라온 골목길과 먼지 묻은 발자국을 지워나간다

 

술 취한 바지와 가리지날 원피스가 엉겨 붙는다

시너지효과만 주절대는 펜티와 브라자, 쌍방울표

메리야스는 멀티 오르가즘을 탐색하다 빈혈을 일으킨다

게임기에 빠진 모자와 양말이 게임 속도를 높인다

 

천상의 속도와 지상의 속도가 맞붙자

괄약근을 조이는 세상이 쿨럭거리며 구정물을 쏟아낸다

잃어버린 낙원이 물기 하나 없이 탈수된다

 

우리 아직 살아있지?

햇빛 좋은 베란다에 환골탈태한 감색 바지와 꽃무늬 원피스

눈높이가 다른 모자와 양말이 나란히 널린다

거꾸로 본느 하늘이 파랗다

 

하느님도 가끔은지구라는 통을

통채로 돌리신다

 

 

2010년 오늘의 좋은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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