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즈음 / 최영철
여자를 겁탈하려다 여의치 않아 우물에 집어던져버렸다고 했다 글쎄 그
놈의 아이가 징징 울면서 우물 몇 바퀴를 돌더라고 했다 의자 하나를 들
고 나와 우물 앞에 턱 갖다놓더라고 했다 말릴 겨를도 없이 엄마, 하고 외
치며 엄마 품속으로 풍덩 뛰어 들더라고 했다 눈 딱 감고 수류탄 한 발을
까 넣었다고 했다
담담하게 점령군의 한때를 회고하는 백발의 일본 늙은이를 안주 삼아
나는 소주 한 병을 다 깠다 캄캄하고 아득한 소주병 속으로 제 몸에 불을
붙인 팔월이 투신 하고 있다 자욱한 잿더미의 빈 소주병 들여다보여 나는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온몸에 불이 붙은 아이들이 엄마, 엄마, 울먹이며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흥미 있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미의 힘 / 박규리 (0) | 2012.02.18 |
---|---|
방언 / 고영민 (0) | 2012.01.20 |
목젖 / 박성우 (0) | 2011.09.20 |
가을 파로호 / 김영남 (0) | 2011.06.16 |
뻐드렁니 / 김언희 (0) | 2011.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