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 탁본에 들다
서숙희
푸른 소리의 집에 한지 한 장 올려놓고
말씀을 허락받듯 가만히 먹을 바치면
소리는 검은 박하향을 몸 가득히 머금어
스미듯 번지듯 길을 내는 먹물 위에
점묘화로 피어나는 영락이며 옷자락
꽃구름 자욱이 거느려 홀연한 나부낌이네
살과 뼈 다 녹인 천년을 참은 울음이
또 다른 천년에 들어 두 손을 모으니
서원은 영원에 닿아 세상은 적막인양
말하지 말라 먹물이 검다고 무겁다고
검어서 더 가벼운 저 눈부신 만다라
지금 막 하늘로 오르는
에밀레의, 흰 뒤꿈치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야의 새벽 / 김재길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0) | 2013.01.03 |
---|---|
국수 / 유종인 (0) | 2012.10.03 |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 이정환 (0) | 2012.05.09 |
나의 아라키스트여 / 박시교 (0) | 2012.05.03 |
큰일 / 이종문 (0) | 2012.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