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있는 시

밤의 프랑스어 수업 / 김경미

주선화 2018. 12. 19. 19:31

밤의 프랑스어 수업

                                    김경미



스물한 살이거나 하다못해 서른네 살도 아닌데

돌은 썩고 물은 굳는데


기차는 낭비를 싣고 어제도 오늘도 달리네

금잔화보다 시끄러운 이빨을 드러내거나

구멍 난 검정타이어처럼 질질 끌거나

바닥없는 슬리퍼가 되거나 원장이 달아난 병원이 되고

소방차들 물 뿌리고 간 전소(全燒)가 되어 달리네


아무리 낭비해도 종착역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

껌 종이를 열거나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가르듯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무엇입니다, 까지만

수월하리라는 것

혀를 잡아당기고 놓치고 다시 잡아당기다

또 놓쳐 얼굴에 고무줄 맞는 낭비나 반복되리라는 것

벚꽃이나 수박처럼 한 계절도 채 못 넘기리라는 것

입안에 숨어든 혀가 오늘도 내일도 계속 감추리라는 것

오 분은 고사하고 삼 분도 안되어 대화가 끊기리라는 것


그래도 기차는 또 다른 낭비를 싣고 다시 출발하겠지

밤의 강의실은 밤바다처럼 넓고

청춘남녀들에게선 복숭아냄새가 나는데

어둔 창밖으로는 밤비가 내리는데

밤비답지 않게 세찬데

낭비는 더 세차고

그 이유와 원리를 스웨트 보푸라기인지 자꾸 입가에 들러붙고

프랑스로 출발도 하기 전에

낭비만 더 늘고 고무줄만 더 늘어나리라는 것

얼굴만 아프리라는 것


오늘은 하필 얼룩말 무늬의 옷까지 입었으니

저 비를 맞으면 가짜 줄무늬가 금세

얼기설기 번지거나 흐려지겠지 맨몸이 드러나겠지

밤비는 더욱 세지고 우산도 없고

다음 기차로 곧 따라갈 테니 먼저 가 기다리라고

괜히 손을 한번 흔들어보겠지만

곧 만날 듯하겠지만

점점 더 어이가 없고

점점 밤만 깊어지고 시간 낭비만 거세지고

우산 나눠 쓸 사람도 없고


이 모든 게 프랑스어가 아닌

한국어와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