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푸른 자궁이 열릴 때
이가을
갓난 사과는 울지 않았다
가지의 떨림을 알아챈 땅속 나무의 발이
재빨리 사과를 받아주었다
갓난 사과를 보려고 모여든 모과나무들
스커트를 펼치고 둥글게 섰다
어떤 나무는 잎사귀를 열어 빨강을 담느라 바빴다
누구인들 빨갛게 익고 싶지 않을까만
나무의 자궁이 열릴 때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왔다
바다의 자궁이 열릴 때 돋는 해가 붉은 걸 알았다
사과 잎과 꽃의 노래는 어떤 빛깔일까
모과의 상상이
사과의 볼이 빨개지는 순간에 피어난다
탄생을 알리는 알림종의 울림, 사과가 태어났어 □
오늘의 사과가 태어나고
내일의 사과는 자랄 거야
햇빛과 바람의 각도를 조율하고 계절의
언덕을 넘었다
폭풍과 싸우고서야 나무의 발이 단단해졌다
어둔 밤 폭풍의 발톱 따위 견뎌야 하는 것
갓난 사과의 눈동자를 보고 싶은 것
여우는 햇빛 닮은 사과의 빰을 '아삭'
깨물어보고 싶은 것
이 밤에 누군가 노래를 한다면 나는
사과나무와 춤을 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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