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따는 일
권기선
나는 아버지 땅이 내 것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
린다 그런 마음을 먹은 뒤부터 아버지 땅에 개가 한
마리 산다 깨진 타일조각 같은 송곳니는 바람을 들
쑤신다 비옥한 땅은 질기고 촘촘한 가죽의 눈치를
살피다 장악되고 과잉되다 갈라진다 아버지는 땅
을 방치하고, 나는 그것을 납치한다 깊은 목젖을 끌
어올려 목줄을 뜯은 늙은 개가 간신히 사과 하나를
놓고 엎드렸다 세상 혼자서 짊어지려던 남자의 무게
를 견디다 어깨가 굽었다 힘은, 무기의 정착역 같았
다 엎드린 개가 일어서지 못하고, 사과는 지하의 고
요한 관(棺)을 기억해낸다
아버지는 땅에 몰래 사과나무 한 그루 심은 날 그해
사과는 한 개도 달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땅이 내 땅
되던 날 나는 사과나무 아래 아버지를 묻었다 병 걸
린,
아버지를 먹고 자란 사과나무
붉은,
사과 따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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