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도마뱀 각시 / 임재춘

주선화 2020. 8. 13. 13:10
도마뱀 각시
ㅡ 임재춘


쓰다가 씻어놓고 나간 도마가
물기를 말리며 부엌을 지키고 있다
외로움에도 꼬리를 잘라먹고
습습한 타일 벽 구석의 어둠에도 잘라준다

낮은 창문 틈에 꼬리가 잡힌다
미끄러지는 방향이 내 길을 잘라놓는다
침묵하는 달빛을 밟고 나섰다

시간을 잘라먹고 늦게 돌아온
감정들이 술렁거리는 부엌
온몸에 묻혀 온 냄새의 분신들이 기어 오른다
어디인지 모를
사방으로 다니던 꼬리의 행방

머물다가 잠시 나가버린 너
보이지 않는 어디
그늘 속에서 밤을 보내는 거니?
마음의 꼬리를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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