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사막여우 / 이종섶

주선화 2020. 12. 29. 11:49

사막여우

 

ㅡ 이종섶

 

 

  날개로 사막을 읽다가 깃털을 다친 새들이 떠나버리면, 모래벌판은 귀로 읽어야 한다며

물끄러미 잔모래가 흘러내리는 언덕을 쳐다보는 사막여우

 

  해가 뱉어내는 대낮의 뜨거운 고백과 , 달과 별들이 쓰는 푸른 밤의 일기와, 바람이 다급하게

써놓고 간 편지까지,

  커다란 귀를 쫑긋 세워 부지런히 탐독한다

 

  사막의 출생 비밀을 귓속에 간직한 채 더위와 추위를 피해 힙겹게 살아가는 동안,

귓구멍에 차곡차곡 쌓이는 극한의 외로움

 

  해마다 늘어나는 어린 먼지들의 때 묻지 않은 잠자리를 위해 귓속에 새끼를 낳아

모래와 달빛으로 지은 저녁밥을 먹이면,

  어미의 가난한 굴속에서 얇은 귀가 두꺼워지는 피붙이들

 

  귓밥처럼 가지고 놀던 모래 속에서 어둡기만 했던 고막이 환하게 밝아진 날,

모래시계의 폭풍 속에서 찾아낸 어미의 사막으로 떠난다

 

  돌아온 새들은 날개를 다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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