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각북(角北)ㅡ 눈 / 박기섭

주선화 2021. 1. 8. 10:29

각북(角北)ㅡ 눈

 

ㅡ 박기섭

 

 

1.

각북(角北)에 눈이 왔다, 뿔이 다 젖었다.

행여나 귀 밝은 눈이 눈치라도 첼까 보아

햇볕을 조리차하여 언 콧등을 녹인다.

그렇듯 한동안은 음각의 풍경 속에

마을도 과수밭도 앞섶을 징거맨 채

안으로 번지는 먹물을 닦아내는 시늉이다.

 

2.

풍경이 다 지워졌다, 백색의 암흑이다.

겉장을 뜯지 않은 천연의 공책 한 권

먼 데서 경운기소리가 한 모서릴 찢고 간다.

밤새 흐르지 않고 두런대던 골짝물들이

얼겉에 생각난 듯 빈 공책을 당기더니

썼다간 찢어버리고 찢었다간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