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고 누구나 아는
ㅡ 문혜연
오늘 밤은 공기에서 종이 냄새가 나요
나뭇잎들이 가장 예쁠 때
젖은 몸을 던지는
어떤 새의 발톱은
나무를 붙들기 위해서만 쓰인다던데
나무들은 대체 언제부터
밤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을까요
깊이도 무게도 알 수 없는
둥지 하나를 매단 채로
손목에 새를 새긴 아이는
밤새 손목이 두근거려서
밤을 없애기로 합니다
그러니까 이 밤을 마지막으로
밤이 사라진 세계에는
실수가 없고 꿈이 없어서
나무들이 하얗게 세어 버린다고
노인이 아이의 등을 쓸어줍니다
아이는 자신의 온 등으로
노인의 나무껍질 같은 손바닥을 느끼고
가끔 둥글고 뜨거운 것이 내려가고
새를 잃어버린 어른들은
숲에 말간 얼굴을 감춰요
나무는 점점 더 희고 묽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곳은 흰 나무의 숲
젖은 종이 냄새가 나요
훗날 발견된 글자처럼
새를 주운 아이는
손안의 심장이 뛰는 리듬을 잊지 못합니다
지그시 눌려보면 두근거리는
돌아갈 밤이 없는 아이는
둥지를 더듬습니다 까치발로
새들의 둥근 어깨를 훔치고
흰 나무에 남은 줄무늬 같은
흔적만이 그 밤을 기억합니다
노인은 자기 손바닥을 쓸어보며
작은 등 하나를 기억하고요
아이가 사라진 세계는
붙잡혀본 적 없는 손목들만 남아서
긴 소매 속으로 자라나는 어둠
낮과 낮의 사이로
문득 겨울이 옵니다
떠나거나 떠나지 않거나 그렇게
떼를 놓친 새들이 살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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