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계단은 발명되었다 / 노태맹

주선화 2022. 6. 21. 09:15

계단은 발명되었다

 

ㅡ노태맹

 

 

계단은 천사의 날개,

날개 없는 인간들을 위하여 천사는 계단을 쌓고

태양과 별들과 구름의 말들이 있는

저 높은 궁전을 올려다보게 하였네.

 

계단은 인간의 발자국이 새겨진 발명품,

향기로운 천사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와이파이를 올리고

태양과 별들과 구름의 말들을 올려다보기 위해

인간들의 섬돌 모서리마다에 스스로의 피를 새겼네.

 

더 높이 우러르는 영광을 위하여

황금의 계단은 더 아래 지하까지 파고 들어가고,

지하의 아버지들은 곰팡이 같은 붉은 모자를 쓰고

비에 젖은 빵과 치즈를 선물처럼 핥고 계셨네.

 

계단 맨 꼭대기에 선 궁전을 위해

인간들은 푸른 돌로 서로의 텅 빈 머리를 텅텅 울리고

두려움이 가득한 가슴을 붉은 칼로 찌르며

두 손 올려 통곡의, 통곡의 기도를 올리고 있네.

 

그대 내려다보라

계단은 천사의 위대한 발명품,

누군가를 저 아래로 밀어버리기 위한 윤리학

천사가 분배하는 행복의 일반균형이론.

 

그러나 아버지가 지하의 벽에 머리를 부딪칠 때마다

컴컴한 하늘에서 번쩍거리는 저 우레의 의미를

누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숨죽이고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천사여,

천사여.

 

 

 

 

 

 

 

 

 

 

 

 

 

'마음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이블(외1편) / 박지영  (0) 2022.06.24
연(戀)(외 2편) / 고미경  (0) 2022.06.22
마트료시카 / 이설야  (0) 2022.06.14
불쑥 / 박소란  (0) 2022.06.08
두 개의 현을 켜는 정오 / 정자경  (0) 2022.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