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제1회 동피랑 문학상 작품상 / 심강우

주선화 2022. 9. 9. 08:51

동피랑, 나비 마을

 

-심강우

 

 

동쪽 벼랑에 나비가 사는 마을이 있다

물감이 떨어질 날 없는 화가가 채집한

단색의 애환만 있어도 좋을 한갓진 풍경

방방곡곡 나비가 참 많기도 하지만

뱃고동으로 첫 페이지 넘기는 강구안

색색의 날개가 장식한 화보집이다

 

나비들의 문패는 한 해 걸러 바뀐다

드난살이 골목이래도 하늘은 자란다

은륜이 달리고 피아노건반이 춤추고

구름이 예약한 고래가 휘파람으로 부는

그곳은 날마다 꽃술의 축제 기간이다

 

나비의 더듬이에 들킨 울음기

한산도 수루에서 물어 온 언약을

해거름녘 다도해에 묻어 두었다

바늘만한 설움도 벼랑 꼭대기에 서면

붉게 번져오는 눈먼 사랑이 거기 있다

출항하는 소리에 맞춰 비행을 시작하는 나비

어쩌면 황홀한 저 빛깔은 나비의 해묵은 구애

꽃떨기처럼 섬에서 섬으로 호를 긋는 배들

그때 어부들은 흔연히 나비로 돌아가는 시간

 

동쪽 벼랑에 백화만발한 마을이 있다

매혹적인 나비의 필체로 방명록을 준비한

사계절 물감이 마르지 않는 나비 공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