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마침표 없는 시 / 남길순

주선화 2024. 5. 26. 08:42

마침표 없는 시

 

-남길순

 

 

한 시인의 부음을 받는다

 

석양,

사람보다 멏 배나 길어진 그림자가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조금씩 발을 옮기며 배웅하는 사이

 

나무와 새와 빗자루 - - - 사라지는 마당에

어둠이 들이찬다

 

책으로든

얼굴로든

목소리든

시인은 더 가깝게 다가오고

 

시집을 찾아 모서리 접힌 페이지를 읽다가

책상 위에 펴 두는 방식으로

시인을 추모한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들고 나는

밤을 지나

간절함도 아픔도 멀어져 혼곤한

겨울의 끝에 다다라서야

 

시신을 기증하여 별도의 장지가 없다는

마침표 없는 시를 읽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을 잘 몰라서

 

마당에 나가

그가 섬기던 하늘을 우러러 본다

 

깜깜한 하늘에 비질을 하듯

별이 하나 떨어졌다*

 

 

*김형영 시인, <무명씨無名氏> 에서.

 

 

 

 

 

 

 

 

 

'마음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 / 이문재  (0) 2024.05.31
노각 / 유종인  (3) 2024.05.28
장춘사 / 김명희  (0) 2024.05.26
달아공원에서 / 이달균  (0) 2024.05.24
우리의 문장은 외따로 존재할 수없다 / 정진혁  (0) 20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