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박소란
신발장에 쥐,
쥐가 산다는 걸 알았다 밤낮 부스럭대는
엄마손에서 어제 일인분 김치찌게를 포장할 때도
쥐는 살아서
천장을 뛰어다녔다
비닐을 벗길 수 없다
거기 잘 익은 생쥐 몇 마리 벌겋게 젖어 있을 것 같고
그렇다면 낭패지
나나 쥐나
구산동 반지하 살 때였나? 서랍장 뒤편에 새끼를 친 쥐
몇날 며칠 찍찍대던
식구였을지도 그 깜찍한
쥐, 쥐들을
빗자루로 때려죽인 건 엄마였나?
엄마는 죽어서도 고단하겠다 쥐를 잡느라
엄마나 쥐나
배를 곯는지 허름한 식당 구석을 전전하며
사는지, 어딘가 살고 있는지 아직
보란 듯 나를 쫓고
신발장 앞으로 기어가 조용히 귀를 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편의 쥐도 조용히 귀를 세우고 있겠지
너도 참 너다 하면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엄마도 죽고 쥐도 죽고 아주 먼 옛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죽은 줄 알았는데
나는
이빨 자국 난 신발을 신고 자꾸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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