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옛날이야기 / 박소란

주선화 2024. 7. 15. 08:39

옛날이야기

 

-박소란

 

 

신발장에 쥐,

쥐가 산다는 걸 알았다 밤낮 부스럭대는

 

엄마손에서 어제 일인분 김치찌게를 포장할 때도

쥐는 살아서

천장을 뛰어다녔다

 

비닐을 벗길 수 없다

거기 잘 익은 생쥐 몇 마리 벌겋게 젖어 있을 것 같고

그렇다면 낭패지

나나 쥐나

 

구산동 반지하 살 때였나? 서랍장 뒤편에 새끼를 친 쥐

몇날 며칠 찍찍대던

식구였을지도 그 깜찍한

쥐, 쥐들을 

빗자루로 때려죽인 건 엄마였나?

 

엄마는 죽어서도 고단하겠다 쥐를 잡느라

 

엄마나 쥐나

 

배를 곯는지 허름한 식당 구석을 전전하며

사는지, 어딘가 살고 있는지 아직

보란 듯 나를 쫓고

 

신발장 앞으로 기어가 조용히 귀를 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편의 쥐도 조용히 귀를 세우고 있겠지

너도 참 너다 하면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엄마도 죽고 쥐도 죽고 아주 먼 옛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죽은 줄 알았는데

나는

이빨 자국 난 신발을 신고 자꾸 어디로 가나?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밤으로 갈까 / 김휼  (0) 2024.07.19
입술 / 김경후  (0) 2024.07.18
당근밭 걷기 / 안희연  (0) 2024.07.10
데자뷔 / 안지은  (0) 2024.07.09
청혼 / 안희연  (0) 2024.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