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너의 밤으로 갈까 / 김휼

주선화 2024. 7. 19. 12:58

너의 밤으로 갈까

 

-김휼

 

 

이 골목의 밤은 미완의 사랑 같다

 

어슬렁거리는 그리움과 내일을 맞대 보는 청춘들의 객기,

접시만 한 꽃을 피워 들고 저녁을 달래는 담장, 그 아래

코를 박은 강아지의 지린내까지

 

어둠에 물드는 것들을 간섭하느라

거북목이 되는 중이지만 난 괜찮다

 

홀로 선 사람은 다정을 기둥으로 대신하는 법이라서

담보 없는 빈 방과 함석집 고양이의 울음까지 시시콜콜

알려 주는 이 골목의 살가움이 좋다

 

붙박이로 있다 보니 사고가 경직될까 봐

나도 가끔 어둠에 잠겨 사유에 들곤 한다

 

진리는 항상 굽은 곳에 있다

비탈을 살아내는 이 기울기는 너의 밤으로 가기 좋은 각도

 

퇴행을 앓는 발목에 녹물이 들겠지만

굽어살피는 신의 자세를 유지한다

 

깊숙이 떠나간 너를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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