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마른 멸치가 사나워질 때 / 정우영

주선화 2024. 7. 29. 09:54

마른 멸치가 사나워질 때

 

-정우영

 

 

멸치를 다듬어요.

무언가의 주검이 아니라 식재료로.

통째로 몸 내어주시니 그저 고맙지요.

쌈싸레한 내장과 대가리는 사절입니다.

미안하지만 내 기호가 아니에요.

매콤달콤 볶음을 떠올리자 손놀림은 가볍고요.

콧노래도 절로 흘러나옵니다.

무아지경 멸치 똥 뽑아내는데,

 

이런 내 일상이 불통스럽다 느꼈을까요. 모자란 놈 하나 뉴스에 나와,

평화 위해 전쟁 준비하자고 떠듭니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받아

들이면서도, 전쟁이란 말에 들린 내 손은 마구 사나워집니다. 멸치 주

둥이도 내 손을 물어뜯겠다는 듯 진저리 치고요, 뽑혀 나온 가시들은

일전 불사의 전의로 팽팽합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의 참화로 눈앞은

뿌예져가고, 찰진 욕설이 방언처럼 터져 나옵니다. 저 저, 메루치 똥통

에 처넣어도 분이 안 풀릴 넘 같으리, 에라이, 호랭이가 물어 가다 씹어

먹을 인간아. 전쟁이라니. 전쟁이 무슨 건달 침 뱉기냐, 아무 때나 찍찍

내갈기게.

 

정신 차려보니 내 욕설에 버무려진 멸치가 바닥에 흥건하네요. 

공포가 가라앉자 쭈뼛거리던 긴장도 눅어듭니다.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내 손길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갑니다.

가만가만 멸치 속 떨어내면서 화해하지요.

용서해라, 멸치야. 네가 곧 내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