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엠페리파테오/ 김안

주선화 2024. 7. 31. 10:51

엠페리파테오

 

-김안

 

 

눈이 오면 땅은 몸에 박힌 발자국을 밀어낸다.

발자국이 향하고 있는 끝에

네가 있다.

 

잠깐 기우는 나뭇가지 따라

너의 이름이 미끄러진다.

별도 잠깐 낮아지고

 

눈의 단념에는 모서리가 없어서

굶주린 고라니 허기를 달래고

조심스레

눈은 땅의 타락打樂을 덮어주는데

 

나는

나무가 되지 못하고

고라니기 되지 못하고

별도 아니어서

네가 있어

제자리에서 발만 구르며 끝을 바라볼 뿐인데

 

그건 병든 몸을 바라보는 신비주의자의 믿음이라고

저 빈 하늘

저 차가운 하늘

가득

 

새 한 마리

제 그림자를 움켜쥐고 날아가자

어둠이 눈발처럼 날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착하게만 살 뿐.

쓸 뿐.

살아내 써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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