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외 2편)
- 김솜
이게 납니다
나 라구요?
날아요
나는 아주 자유합니다만
자유롭지 못한 비행입니다
규정 속도를 인내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길을 벗어날 길 없습니다
사각형 몇 개를 날개라 말하지 마세요
한 자리에 박혀 승강의 어두운 길만 위아래로 납니다
난다구요?
이게 납니까?
나 아닌 사람을 날게 해줍니까?
내게 말 걸고 인사하던 여자가 있습니다
16층에 혼자 살던 여자
끊임없이 나에게 건네던 인삿말
잘 잤니?
오늘은 몇 명이나 날게 해줬니
이웃과 인사는 잘하니
떨어질 때 의심은 없었니
외롭지 않니...
농담처럼 받은 질문들을 그녀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데
오늘 여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16층, 높이를 버렸다는 말을 불현듯 들었습니다
여자의 안녕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펼쳐보지 못한 책처럼
나만 아는 여자의 모든 것을 봉인했습니다
여자의 마지막 말이 들립니다
숫자 버튼을 누르며
넌 나보다 오래 살겠구나
숫자 16에는 여자의 지문과
중얼거림이 여전히 남아 오르내립니다
허술함에 대한 술회
지하철은 역방향으로 내처 달렸습니다
유튜브 속 오클랜드 마오리족의 발박자에 홀려
눈치없이 따라갔습니다
약속 장소에 한참이나 늦었습니다
새참도 밤참도 아닌 한참을 누구 먹었을까요
상갓집에서 헌화하고 절을 올리는 순간
빼꼼 얼굴을 내민 상주의 엄지 발가락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주변의 눈들까지 일제히 모여들었습니다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허술함은 의지의 빈칸입니다
발가락이 내내 따라다니더니
마주친 이웃에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몰입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아픈 발가락만 남았습니다
끌려가지 말자 다짐 했건만 다짐은 기울어진
생각이라서 여기저기에 갇히고맙니다
저지레는 언제나 쉬었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빠져나오는 발가락 같습니다
실패와 실수는 허술한 틈을 노리지만
나는 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발가락에 힘을 주었습니다
의지는 생각을 조이는 나사
상갓집에 다녀온 날이면
지친 기색으로 조금씩 나사가 풀렸습니다
그것이 발가락을 움직이는 신의 일인지 모릅니다
나는 아침을 생각하는데 아침은 나를 생략한다
아침은 온다
개나 줘버리고 싶은 아침, 개가 없다
필요한 것은 늘 멀리 있고
서둘러 칼을 쥔다 권태를 썰듯 토막난 야채를
샐러드볼에 담는다
초록을 한 입 떠먹어도 가볍지 않다
이 안엔 흔한 꽃 한 송이 없다
이유들이 이유없이 늘어나는 쿠바는
아침의 좋은 결과가 아니다
쉬운 일과 쉽지 않은 일이 있다
아침엔 더욱 분명해진다
체 게바라가 살았던 쿠바로 가는 상상을 한다
아침이 혁명처럼 진행되면 체의 표정을 빌려 쓸 수 있을까
개나 줘버리고 싶은 쿠바, 멀다
아침은 늘 엇박자를 두고
출근 준비를 한다
며칠 뒤에 정한 약속은 며칠 전과 다른 아침에 도착했고
스케줄을 뺀다
취소된 샤로수길의 젊은 쿠바, 무엇이 나를 움직였을까
사직서를 찢고,
반성은 꼬리가 있다
길다
유령이 저 혼자 나를 다녀갔을뿐이다
나를 반복하는 나처럼 아침은 아침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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