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웃음과 울음 사이에 파가 있다 / 김솜

주선화 2024. 12. 6. 14:14

웃음과 울음 사이에 파가 있다

 

- 김솜

 

 

파가 판친다

바람이 바람을 파는

2024년 봄은 느닷없다.

 

꽃보다 공空을 먼저 품는 파

 

숫자 875를 매단 순간

엑스트라가 벼락같이 주인공이 된다

 

매대에 길게 누워 처져 있던 파가

몸을 일으켜 춤을 춘다

눈과 귀와 입을 가진 신을 신은 파가

대행진에 가담하고 거리 유세를 한다

 

일파만파 파장이 크고 파열음이 깊게 퍼진다

눈과 귀와 입을 가진 신을 신은 파가

이상할리 없다

언제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어떤 손에 잡힌 순간 파는 상징이 된다

 

잔 술과 까치 담배를 팔던 때처럼

한 단이 한 뿌리 두 뿌리로 분리된다

감정 없는 파가 감정을 조장한다

더 이상 이상할 리 없는 파가 파다하다

 

파안대소하는 파

 

오래 버티면 뜨는 날 반드시 온다는 거

파는 이제 안다

 

부엌의 입장을 살펴야 하는 나는 대파 한 단을 산다

 

파를 썬다

끓는 냄비에 빠진 파는 숨이 죽는다

공空마저 내려놓으니

파향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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