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작약과 공터 / 허연

주선화 2025. 5. 12. 09:18

작약과 공터

 

-허연

 

 

진저리가 날만큼

벌어진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작약은 피었다

 

갈빗집 뒤편 숨은 공터

죽은 참새 사체 옆

 

나는

살아서 작약을 본다

 

어떨 때 보면, 작약은

목매 자살한 여자이거나

불가능한 목적지를 바라보는

슬픈 태도 같다.

 

아이의 허기만큼이나 빠르게 왔다 사라지는 계절

 

작약은

울먹거림.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

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책임을 진다

 

공터 밖으로 전해지면 너무나 평범해져 버리는 고요 때문에

 

작약과 나는

가지고 있던 것들을 여기 내려놓았다

 

작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었다.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탈에 기대다 / 박설희  (1) 2025.05.19
불행한 일 / 박소란  (0) 2025.05.15
죽변항 / 안도현  (0) 2025.05.07
없는 존재 / 변선우  (0) 2025.04.21
희끗, / 김근  (0) 20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