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과 공터
-허연
진저리가 날만큼
벌어진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작약은 피었다
갈빗집 뒤편 숨은 공터
죽은 참새 사체 옆
나는
살아서 작약을 본다
어떨 때 보면, 작약은
목매 자살한 여자이거나
불가능한 목적지를 바라보는
슬픈 태도 같다.
아이의 허기만큼이나 빠르게 왔다 사라지는 계절
작약은
울먹거림.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
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책임을 진다
공터 밖으로 전해지면 너무나 평범해져 버리는 고요 때문에
작약과 나는
가지고 있던 것들을 여기 내려놓았다
작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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