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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 꽃차례 닮은 당신 / 서주영

산방 꽃차례 닮은 당신 -서주영 그리운 당신의 하루하루가 피어 여름이 온다갈 수 없어, 닿을 수 없어 피는 저 꽃들 촘촘하게 결을 만들어 산방 꽃차례로 달려 있는 햇살들이연한 자줏빛이었다가 하늘빛이었다가 연한 홍색이 되면 가도 가도 멀어지는 아득한 그 길에서보이지 않는 당신의 발자국만 또렷해진다 족감이 만져지는 당신의 젖가슴을 닮은 꽃다정한 음성이 말랑하게 잡힐 듯한 꽃송이들이 모여당신에게 가는 길이 분명해진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당신의 눈물이 피어 있는 이 계절에애틋한 당신을 닮은 산방 꽃송이들이 나를 끌고 간다 높고 깊은 길 아닌 그늘에서가도 가도 멀어지기만 하는 그리움이수묵화처럼 조용히 번지는 날 수시로 합쳐지는 경계 잃은당신과의 어제는 더없이 적나라하게 피어나고 엄마라는 꽃도 한때 피었다가 지..

강그라 가르추 / 정끝별

강그라 가르추 -정끝별 한밤을 가자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밤을맨발로 달려가자 모든 죄를 싣고 검은 야크의 눈에서른 개의 달을 싣고 강그라 가르추를 가자가다 갇히면 덧창문 아래서강된장을 끓이며 오랜 슬픔에씨앗만해진 두 입술을 나누며뭉쳐진 밥알처럼 숨죽이며 가자 얼음 박힌 서로의발꿈치를 어루만지며 가자버리고 온 것들이 숭늉처럼 가라앉을 때눈보라에 튼 붉은 뺨을 씻고 처마 밑 고드름 녹는 소리에순무들의 푸른 귀가 돋는 곳으로 도망 가자도망 온 것들이 그리워지는 그곳으로 가자 몇 날 며칠을 가자너라는 천산산맥 나라는 만년설산 너머강그라 가르추를 넘어

미로 / 주선화

미로 -주선화 비가 오는데우산도 없는데지나가는 사람들 힐끔거리는데신발이 젖고 있는데배도 고픈데아이들 밥 챙겨줘야 하는데집에 불도 때야 하는데 왜 이렇게 춥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엄마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나는 배가 고프고엄마는 언제 오나잠이 오는데깜깜해지는데무서운데 오랜 기억은 가깝고가까운 기억은 자꾸 달아난다내 아이의 엄마와 내 엄마의 아이 사이는자꾸 희미해지고나는 지금엄마일까아이일까어디가 어디일까언제는 언제일까 *2025년 여름호 문학 수(秀) 발표

발표작품 2025.06.06